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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님 특별기고> 꿈속에서라도 만나고 싶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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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3-05-2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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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 그리운 어머니....

봄꽃이 피고, 봄 향기 그윽한 5월이면 어머니가 몹시도 그리워진다. 이때쯤엔, 어머니라는 단어만 들어도, 카네이션만 보아도, 길을 가는 노인만 보아도 가슴이 뭉클해질 정도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이토록 그리운 내 어머니께선 다른 어머니들처럼 한평생을 당신보다는 자식들만을 위해 사셨다.

올해 5월도 평생 고생만 하시다 가신 어머니 생각에 마음이 너무 시리고 아프다. 돌아가신 분이 꿈에 나타나면 좋지 않다고 하는데, 2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꿈속에서 처음 만났을 땐, 살아생전에는 그렇게 다정하시고 인자하셨지만 나를 보더니 차갑게 외면하셨다. 엄마, 엄마하고 울면서 따라가는 나를, 어머니는 끝까지 외면하시고 어릴 때의 동네 골목 어귀로 숨어버리셨다.  울면서 걸어가는 나를 먼발치에서 고개만 내밀고 보시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또다시 숨어버리셨던 꿈속의 내 어머니!

그 후론 꿈속에서도 어머니를 만날 수가 없었다. 5월이면 꿈에서라도 다시 뵙고 싶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어머니!


나는 항상 어린애처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도 절절하다. 어머니 때문에 나이 예순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시울은 붉어지곤 한다. 보고 싶다. 오늘따라 창가에 그려지는 어머니 모습. 어머니는 내 코 흘리게 시절 유난히도 추운 겨울, 내가 지독한 감기로 고통스러워할 때, 밤새 곁에서 당신의 체온과 기도로 고통과 아픔을 이겨내게 해주셨고, 내게 커다란 정신적 유산을 남겨주셨다.


4년 전 일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졸업하고도 오랫동안 만난 적이 없던 친구가 멀리 부산에서 문상을 왔다. 목포까지 어떻게 왔냐고 물으니, ‘너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너희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그 친구는 흑산에서 목포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우리 집에 친구들과 자주 와서 어울렸었고, 그때마다 어머니가 무척이나 잘해주셨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만사를 제치고 목포까지 왔다고 했다. 그 외에도 친구들이 어머니 말을 많이 하였다. 어머니가 해주신 말씀을 나는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데, 그중에 “남의 눈에서 눈물 빼지마라. 그러면 본인은 피눈물을 쏟는다.”는 말은 금과옥조로 가슴에 새기고 있다.

이런 어머니를, 꿈속에서라도 만나고자 기다린다. 뱃속에 넣고 열 달의 고통도 부족하여, 살아생전을 오로지 자식을 위한 희생으로 일관하신 분이었기에, 연구실 창가의 노란 개나리꽃을 쳐다보면서 이따금 눈물이 맺힌다.

그 어머니가 오늘따라 무척 그립다. 성인이 되어 내 갈길 바쁘다는 핑계로 어머니를 뵌 날 보다는 뵈지 못한 날이 더 많았음을 알았을 때, 어머니는 내 곁에 계시지 않았다. 살아계실 때 조금만, 조금만 더 잘할 것을 후회해본들, 돌아가신 날 삼 일 밤낮을 통곡을 하며 무릎이 저리도록 영정 사진에 엎드려 절을 해본들, 어머니는 내 곁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꿈에서 나를 외면하셨던 그 어머니를 꿈에서라도 올해 다시 뵐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립다, 보고 싶다, 인자하신 그 모습이....... 내 뼛속까지 그리움에 사무쳐진 어머니. 이 세상에서 만난 여인 중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자 내가 살아 있는 한 결코 잊을 수 없는 회한의 어머니를!